
각오 안 한 건 아니었어 퇴근하면 저녁 지을 에너지도 부족해 밀키트에서 연명하는 야근을 했고, 마침내 여름방학을 맞았을 때 첫날부터 큰맘 먹고 아침 9시 필라테스를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 쉬기에 알맞은 책을 골랐다. 마침 연말 결산에서 블로그 이웃의 여러 가지 책 추천을 캡처해 놓고 별다른 고민 없이 박호경의 ‘13.65’를 선택했다. 추리소설은 오래간만이었다. 남성 작가의 추리소설이라 걱정스러웠지만 홍콩 작가라는 점이 신선하고 무엇보다 건강한 것 말고는 정크 푸드가 먹고 싶었다. 농심에서 나온 앵그리 차파구리를 끓여 먹고 매운 음식을 무알콜 맥주로 달래며 침대 속에서 두툼한 추리소설을 읽는다. 여름 휴가 첫날에 딱 맞는 일정이었다.
물론 명성 그대로의 추리소설다운 재미는 있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이라는 리뷰를 읽었기 때문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미심쩍게 지켜봤지만 예상치 못한 결말이 튀어나왔다. 2013년부터 1967년까지 시간이 거꾸로 가는 연작 소설이어서 첫 작품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형사관 전두와 중견 형사 나소명이 점차 애송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구성도 흥미로웠다. 여섯 단편 각각은 실제 홍콩의 주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홍콩이란 나라를 아는 묘미도 있었다. 홍콩 경찰서마다 관우 사당이 모셔져 있는 듯한 홍콩 문화도 신기했다. 주인공인 관전두가 “그는 범죄의 천재가 아니며 단지 늙은 경찰에게도 몹쓸 개에 불과하다는 것”(p.342)이라고 말하자 박지성 교수가 “범죄를 저지르면 잡힌다. 모두들 당신보다 머리가 좋아요.”라며 날카롭게 말씀하셨다는 듯 섬뜩했다.
다만 이 소설은 추리소설 속 여성혐오의 정석을 따른다. 우선 이 소설에 등장하는 95%의 여성은 가정부든 아내든 어머니든 매춘부든 잔혹하게 살해된 피해자다. 강간당한 적이 있는 어머니, 사장과 부적절한 관계가 의심되는 17세 연예인, 밤늦게까지 남편을 기다리는 애교 있는 아내, 매춘부의 내연녀로 변주될 정도다. 나머지 5%는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수다시장 상인이거나 두 남자를 농락하는 미모의 권력자인 딸 정도다. 미모의처럼 여성이 등장할 때는 외모 위주로 그리고 남성이 등장할 때는 성격이나 능력을 중심으로 그리는 것도 특징 중 하나다.
스치듯 능력있는 여자가 나올 때가 있어. ‘흑과 백 사이의 진실’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다루는 애플은 다음과 같은 전형적인 모습으로 설명된다. 얼굴에는 화장기가 없었다. 코 끝에는 두껍고 육중한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검은 티셔츠와 오래된 멜빵 데님 팬츠를 신고, 검은 페디큐어를 칠한 손톱 10개가 잘 보이는 샌들을 신고 있다. 애플은 온몸으로 괴짜의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죄수의 도의에서 나샤오밍의 부하 중 한 명은 여경인데 남녀평등을 강하게 주장하는 그녀가 함께였다면(p. 164)이라며 조직폭력배 두목에게 사소한 것을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더 중요한 것을 묻지 못할 뻔했다며 안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죄수의 도의에서 40여 명의 중년 여성 해커는 구딸(p. 204)로 불린다. 이마저도 대사가 몇 마디에 불과한 조연일 뿐이다.
주인공인 관 전두에 대한 모든 것을 무시하고 비열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이었지만 단 한 사람의 생명만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도움도 안 되는 17세 소녀 시위다(p.229)라는 글조차 화가 치밀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17살의 ‘어린애’라고 해도 기가 막히는데 ‘소녀’라고? 폭탄으로 무고한 피해를 입은 여덟 살짜리 네 살짜리 아이들조차 왜 여자여야 하는지 반발하는 게 이젠 노이로제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임신한 아내가 있고, 아무런 상의 없이 신념과 정의를 위해 그만둘 각오를 하는 남성의 모습에서 나는 더 이상 휴머니즘을 느낄 수 없었다.
이 소설의 멋진 주인공들은 관료제에 굴하지 않고 정의 구현을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규정을 어기는 방식을 취한다. 비판적 시각을 가진 독자라면 정당한 목적으로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쓰는 것이 옳은지 의문스러울 수 있다. 그 의문은 이 책 자체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추리소설을 즐기기 위해서라면 여성의 객체화는 용인될 수 있을까. 내가 예민하냐? 아니, 애당초 왜 자기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한 것은 아닌지 검열해야 하는가.
개인적인 의미라면 새해 첫 책이었던 김초엽 작가의 『지구 끝 온실』에서 밑줄 친 『널 의심하지 마』(p.243)와 유사한 문장을 발견했다는 정도다. 새해 두 번째 책이었던 박찬호의 13.67에서는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p.180)는 대목이 나온다. 2022년을 맞는 마음가짐에 대한 계시가 아니겠느냐는 의미를 부여했다.
이제 남성 작가의 추리소설을 시작할 때는 걱정되는 마음을 의심하지 말라.

●●”어떤 시스템의 강도는 가장 센 게 아니라 가장 약한 부분에서 결정돼 주세요”전성기는 이런 이치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시스템 중 가장 취약한 부분을 허위로 만들어내 적을 교란시킨 것이다. 이런 연막작전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말실수를 한 연예인과 영화감독 등을 꾸짖은 것이다. 자신에게 가까운 여성 스타에게 좋지 않은 발언을 하면 반드시 보복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p.214 ‘죄수의 도의’ 중
●●4호 객실의 여성도 챙바오얼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머리에 총상을 입은 23세의 린팡후이는 침사추이의 신푸두 나이트클럽으로 출근하는 여종업원으로 맨디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신푸드 나이트클럽은 유흥업소 중에서도 저급한 축으로 여종업원 모두 몸을 팔아 돈을 벌었다. 이들 희생자는 도덕적으로 높은 지위에서는 대중의 비판을 받았으며 학부모나 선생님이 어린이나 학생을 훈계할 때 반면교사로 삼는 사례가 됐다. 대중은, 그들이 누구였는가 하고 살해당했다는 사실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쁜 짓을 하고, 스스로가 망했다’라고 하는 식으로 그들의 죽음을 해석했다. 인과응보라는 것이었다. 마치 시체를 때리듯 매일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그들을 도덕적 심판했다. -p.402 ‘테미스의 저울’ 중
●●”그런 행동을 할 만한 사람이었다면 임방휘를 죽인 것을 숨기려고 이렇게 복잡한 일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살인의 ‘과정’은 간단하지만 시체를 처리해 의심을 피하는 ‘뒷처리’가 더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p.453 『테미스의 저울』 중